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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에 굶주렸던 히딩크의 발자취…75세에 은퇴 선언 - 토토피아

  • 21-09-10
해외축구 뉴스
승리에 굶주렸던 히딩크의 발자취…75세에 은퇴 선언 - 토토피아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75)이 지도자 은퇴를 선언했다.

히딩크 감독은 10일 네덜란드 방송 ‘SBS 6’에 출연 “나는 퀴라소축구협회 회장에게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앞으로 감독직도 그만두려고 한다. (최근 은퇴를 번복하고 이라크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한) 딕 아드보카트처럼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축구의 영원한 영웅이자 세계적인 명장이다. 한·일월드컵 당시 16강에 오르고도 “나는 아직 배고프다”며 자신을 다그쳤던 그는 19년이 흘러 마침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노익장을 자랑했던 그의 마지막 무대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인구 16만의 작은 섬나라 퀴라소였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의 자치령인 퀴라소에서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 도전하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히딩크 효과는 퀴라소가 북중미 1차예선을 무패(3승1무)로 통과하면서 잘 드러났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2차 예선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한 사이 파나마의 벽을 넘지 못하며 도전도 중단됐다. 히딩크 감독은 “코로나19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데다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고, 북중미 골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현역 시절 평범한 미드필더였던 히딩크는 1982년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친정팀이었던 PSV에인트호번에서 1987년 3월 크라이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아 그해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듬해에는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을 비롯해 트레블(3관왕)을 달성해 명장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선 네덜란드축구대표팀을 맡아 조별리그에서 한국을 5-0으로 대파한 뒤 4강까지 오르는 성과를 냈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레알 베티스에서 거듭 실패해 내리막을 걷기도 했으나 한·일월드컵에서 직전까지 단 1승도 없던 한국을 4강으로 이끌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히딩크 감독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호주를 이끌고 16강에 진출했고, 유로 2008에선 러시아를 맡아 4강에 올라 지도자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히딩크 감독은 2014년 무릎이 망가져 은퇴를 고민했으나 한국에서 수술을 받은 뒤 터키 축구대표팀과 23세 이하 중국대표팀 등도 이끌며 마지막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승리에 굶주렸던 히딩크의 발자취…75세에 은퇴 선언 - 토토피아

히딩크 감독이 한국 지휘봉을 잡은 기간은 1년 6개월에 그쳤으나 그 인연은 깊었다. 4강 신화를 같이 쓴 선수들이 그의 손을 잡고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에인트호번에 동행했던 박지성과 이영표는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드필더와 수비수로 성장했다. 박지성은 2014년 은퇴하는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님은 내 축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회고했을 정도다. 히딩크 감독이 2002 월드컵 직전까지 발탁 여부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밀당’을 벌였던 홍명보 울산 감독을 2014년 브라질월드컵 직전 러시아 안지 마하치칼라에 코치로 불러 지도자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또 그는 히딩크 재단을 설립해 장애인과 유소년 전용 풋살구장인 히딩크 드림필드를 전국 각지에 설립해 기부 문화를 실천하기도 했다.
 
- 출처 네이버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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