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인기는 동계 스포츠에서 그야말로 ‘원 톱’이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종목인 프로야구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수치로 증명된다. 2020-2021시즌 ‘배구 여제’ 김연경 국내 복귀 효과와 ‘네거티브’이긴 하지만 ‘쌍둥이 자매’ 이재영-이다영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여자부의 평균 시청률이 평균 1.29%를 기록했다. 지상파 방송에선 10~15% 대박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지표다. 특히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 순간 시청률은 4.72%를 찍기도 했다.
샐러리 캡 인상은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
주목할 만한 점은 지난해 프로야구의 평균 시청률이 5개 중계방송사 합산 0.782%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프로야구는 하루에 5경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시청률 분산으로 프로배구와 직접 비교가 어렵다. 그러나 인기 지표상만으로 따지면 프로배구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치솟는 인기에 비례해 V-리그 남녀부 샐러리 캡(팀 연봉 상한제)도 점점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V-리그 남자부는 2019-2020시즌 샐러리 캡 26억원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31억원→36억원→41억 5000만원으로 증액하기로 했다. 여자부는 지난해 샐러리 캡을 14억원에서 23억원(옵션 캡 5억원 포함)으로 올렸다. 2022-2023시즌까지 23억원으로 유지하고, 선수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최고액은 샐러리 캡의 25%(7억 2000만원), 옵션 캡의 50%(2억 5000만원)로 정했다.
사실 샐러리 캡을 늘린 이유는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샐러리 캡 외 방법으로 연봉을 보전하는 방식을 제도권 안에 두자는 구단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었다. 그 동안 스타급 자유계약(FA) 선수 영입 과정에는 소위 ‘뒷돈’, ‘검은 돈’이 존재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동산, 차량 제공과 모기업과 계열사 광고 출연, 심지어 친인척의 취직 등을 옵션으로 제공하는 비정상적인 관행이 이어졌다. 그러나 KOVO와 구단은 옵션 캡을 만들어 관행을 없애기로 했다.
샐러리 캡이 늘면서 선수들의 연봉도 증가했다. 2021-2022시즌 기준 남자부 평균 연봉은 1억 5300만원에서 1억 7800만원으로 2500만원 늘었다. 여자부의 평균 연봉은 지난 시즌 1억 1200만원에서 1억 100만원으로 줄었다. 김연경이 중국 상하이로 떠났고, ‘쌍둥이 자매’가 선수 등록을 포기하는 등 세 명의 스타 플레이어의 이탈이 평균 연봉 하락을 불렀다.
‘빈익빈 부익부’
남녀부 연봉 상위 10걸 누구?
남자부는 2020-2021시즌 연봉 7억원의 벽이 허물어졌다. KB손해보험 세터 황택의(25)가 7억 3000만원으로 ‘연봉 킹’에 등극했다. FA 계약을 염두에 둔 선조치로 풀이됐다. 국가대표 세터이기도 하고, ‘국보급 세터’ 한선수(36·대한항공) 다음으로 기량이 좋은 세터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KB손보는 반드시 황택의를 잡기 위해 비FA 선수 중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했던 것이다. 설사 황택의가 FA 이적을 한다고 하더라도 KB손보는 FA 등급제에 따라 선수 직전 연봉의 200%와 보호선수 5명을 제외한 보상선수 1명 또는 직전 연봉 300%를 받을 수 있었다. 황택의의 선택은 잔류였다. 향후 3년간 연봉 7억3000만원씩 받게 됐다.
황택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탄생했다. 한선수다. 계약기간 3년, 연봉 7억 5000만원씩 받게 됐다. 연봉 3위는 ‘배구 대통령’ 신영석(35·한국전력)이다. 6억 5000만원을 받는다. 4위는 정지석(26·대한항공)이 5억 8000만원, 5위는 박철우(36·한국전력)가 5억 5000만원을 받게 됐다. 6위는 최민호(33·현대캐피탈)가 5억 2000만원, 서재덕(32·한국전력)이 5억, 황승빈(29·삼성화재)이 4억원을 기록했다.
여자부에선 ‘대체불가’ 양효진(32·현대건설)이 9년 연속 ‘연봉 퀸’에 등극했다. 7억원(연봉 4억5000만원+옵션 2억 5000만원)을 찍었다. 2위는 GS칼텍스가 여자부 사상 최초로 ‘트레블(한 시즌 컵 대회, 정규리그, 챔프전 동시 우승)’을 달성하는데 주역이었던 이소영이 KGC인삼공사로 FA 이적해 연간 총액 6억 5000만원(연봉 4억 5000만원+옵션 2억원)씩 3년간 받게 됐다. 3위는 박정아(28·한국도로공사)가 5억 8000만원(연봉 4억 3000만원+옵션 1억 5000만원), 4위는 강소휘(24·GS칼텍스)가 5억원(연봉 3억 5000만원+옵션 1억 5000만원), 5위는 김희진(30·IBK기업은행)이 3억 5000만원(연봉 3억원+옵션 5000만원)을 받는다.
고액 연봉 선수들이 늘어나면 긍정적인 효과는 있다. 해마다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자신의 아이들을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에게 프로배구가 어필이 될 수 있다. 높은 인기에 비해 여전히 저변이 열악한 편이지만, 자신의 아이가 프로에서 잘하면 억대 연봉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배구선수로 유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배구 선수들이 많아지게 된다. 그만큼 종목 경쟁력이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다른 세계다. 그야말로 ‘빈익빈 부익부’다. 샐러리 캡이 정해져 있는 만큼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있으면 나머지 선수들은 나머지 금액을 쪼개서 지급받을 수밖에 없다. 고액 연봉 선수들이 평균 연봉 수치를 높이는 결과물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프로배구는 한 팀의 정원이 18명밖에 되지 않아 타 종목보다 더 혹독한 경쟁을 견뎌야 한다.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나 그 팀의 핵심 선수가 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샐러리 캡이 더 높아진다고 해도 억대 연봉 선수로 발돋움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잘하는 선수가 더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
저연봉 고효율 선수는
누가 있나?
그래도 저연봉으로 고효율을 올리는 선수들이 있다. 구단에서 바라는 선수상이긴 하다. 여자부부터 살펴보면 박현주, 이주아(이상 흥국생명), 권민지, 한수진(이상 GS칼텍스), 육서영(IBK기업은행), 김다인(현대건설), 정호영, 고의정(이상 KGC인삼공사)이 있다. 박현주는 외국인 공격수가 맡는 아포짓 자원이라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서브를 갖췄다. 원포인트 서버로 나섰지만, 2019-2020시즌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주아는 2018-2019시즌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곧바로 주전으로 도약했다. 2년차 징크스도 크게 겪지 않았다. 두 시즌 연속 이동공격 성공률 2위에 올랐다. 2020년 컵대회에선 라이징스타상도 수상했다. 지난 시즌엔 김연경의 가세로 공격 비중이 줄었다. 그래도 30경기를 부상없이 모두 뛰었고, 속공은 2위에 올랐다.
권민지는 감독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모든 포지션에서 공격이 가능하다. 여기에 블로킹도 나쁘지 않다. 어떤 선수가 빠져도 대체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다. 프로 4년차인 한수진은 모두를 놀라게 했던 전체 1픽이었다. 그러나 한수진은 GS칼텍스의 한다혜와 함께 투 리베로 체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거미손 수비요정’으로 GS칼텍스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는데 힘을 보탰다.
연봉이 낮은 선수들은 주전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육서영도 마찬가지다. 백업 또는 원포인트 블로커로 활용된다. 그러나 쏠쏠한 공격력을 보여준다. 25경기에서 125득점을 기록해 득점 29위에 올랐다. 김다인도 이다영의 이적 이후 이나연의 백업으로 시즌을 치렀다. 그러나 30경기를 소화하며 주전 같은 백업의 시간을 보냈다. 값진 경험도 했다. 도쿄올림픽 모의고사로 평가받은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에 출전할 여자배구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대회를 뛰었다. 강성형 신임 현대건설 감독이 새 시즌 김다인을 주전 세터로 중용할 지 주목된다.
남자부에선 대한항공의 아포짓 임재영(23)과 미들블로커 진지위(28), 현대캐피탈의 리베로 박경민(22), KB손보 윙스파이커 여민수(23), 삼성화재의 윙스파이커 신장호(25)가 돋보인다.
그야말로 팀 내 보배들이다. 지난 시즌 ‘원포인트 서버’로 활용되던 임재영은 지난 3월 29일 우리카드전에서 인생경기를 펼쳤다. 세트스코어 0-1로 뒤진 2세트 중반에 투입돼 매서운 서브로 상대 리시브 라인을 흔들며 팀의 역전승에 힘을 보탰다. 박경민은 인하대 재학 3학년 때 얼리드래프티로 입단한 지난 시즌 신인이지만, 단숨에 주전 리베로로 도약했다. 플레잉코치 여오현과 투 리베로 체제로 가동됐지만, 사실상 주전은 박경민이었다. 36경기를 모두 소화한 박경민은 신인이었기 때문에 연봉 4000만원의 기적을 쓴 셈. 여민수도 지난 시즌 2라운드 7순위로 뽑힌 신인이다. 신장은 1m86으로 작은 편이지만, 높은 점프력과 강력한 서브로 KB손해보험의 비밀병기 역할을 수행했다. 33경기나 소화하면서 주전 같은 백업으로 활약했다. 신장호 역시 소위 ‘가성비 갑’이었다. 꼴찌 삼성화재의 전담 공격수였다. 34경기에서 407득점으로 득점 부문 1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외국인 공격수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한 부분을 신장호가 잘 메워주긴 했지만, 외인만큼의 파괴력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판은 작은데…
구단들의 부담은 ‘UP’
복수의 스포츠마케팅 관계자들은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프로배구는 인기는 높은데 판이 작다.” 종목은 경기적으로 시스템화가 돼가고, 활성화 되고 있다. 그러나 돈 벌 구멍이 많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다. 구단도 마찬가지다. 남자부 기준 한 팀이 1년에 정규리그에서 치르는 경기는 36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홈 경기는 절반인 18경기에 불과하다. 경기장도 최대 3000석 규모이기 때문에 입장료와 상품 판매 등 구단이 올릴 수 있는 수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자부 구단들은 한 시즌 동안 적게는 60억원, 많게는 100억원 이상을 사용한다. 모기업 의존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는 종목이 프로배구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컬한 모습이다.
매출 한계가 보이는 상황에서 샐러리 캡이 늘어나는 건 구단에겐 부담일 수밖에 없다. 선수들은 샐러리 캡이 늘어나는 만큼 연봉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하는데 KOVO와 구단들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단들이 바라는 건 선수들의 연봉이 오르는 만큼 좀 더 마케팅적으로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간단한 방법은 경기수 증가가 있다. 다만 중계방송과 많은 부분이 연결돼 있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KOVO는 남녀부 전경기를 두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사를 통해 중계하고 있다. 헌데 경기수가 늘어나면 중계권료가 인상돼야 하는데, 프로야구 시즌과 겹쳐 오히려 중계가 안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경기수는 늘어나는데 방송 노출 빈도수는 기존대로라면, 큰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때문에 경기수를 늘리는 안건을 쉽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배구 판을 키우려면, 국제 대회가 삽입돼야 한다. 사실 프로배구는 따지고 보면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다. 국제대회는 모두 대표팀에 집중돼 있다. 그 동안 ‘한·태 올스타전’, 컵대회에 외국팀 초청 등 KOVO에서 주관했던 이벤트성 옵션만 있었을 뿐 프로축구처럼 아시아챔피언스리그와 같은 국가별 프로 팀 대항전은 마련돼 있지 않다. 국제배구연맹(FIVB)에는 200여개의 가맹국을 한 조직처럼 움직이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같은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도 아쉽다. “타국 팀들도 별도 비용이 발생하는 걸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이 프로배구가 판을 키우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수들의 치솟는 연봉을 감당하려면 구단들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구단 운영에서 탈피해야 한다. 독립법인화를 통한 수익 다각화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프로 종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다. 선수들의 연봉을 감당할 수 없다고 불평하기 전 구단들이 안전주의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 출처 네이버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