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어도 잇몸으로 해야 하는 게 두산이다. 기적과 같은 경기가 한번쯤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 선수단 맏형 이현승(38)이 또 한번 가을의 기적을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두산은 정규시즌 성적 71승65패8무로 4위를 확정했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7년 연속 가을 야구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전반기에는 7위까지 처져 있다가 후반기 성적 35승26패8무 승률 0.574로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줄줄이 주축 선수들이 FA로 유출되는 상황에서도 지난 6년 동안 한국시리즈 개근 도장을 찍은 경험이 빛을 봤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가을 무대에 오른 두산을 향한 평가는 5강 팀 가운데 가장 박하다. 포스트시즌은 단기전이라고 해도 확실한 선발투수를 최소한 3명은 확보해야 하는데, 두산은 현재 전력상 쉽지 않다. 두산은 삼성 라이온즈, kt 위즈, LG 트윈스, 키움 히어로즈 등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 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외국인 투수가 없다.
에이스 아리엘 미란다는 시즌 막바지 왼쪽 어깨 피로감을 호소해 이탈했다. 현재 훈련을 진행하고 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 복귀는 어렵다. 2선발 워커 로켓은 팔꿈치 수술을 받기 위해 지난 20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설상가상으로 3선발 최원준마저 와일드카드 결정전 등판이 힘들다. 최원준은 지난 21일 인천 SSG전 등판 후 4일을 쉬고 26일 잠실 키움전에 나섰고, 3일 휴식 후 30일 대전 한화전에 등판했다. 다음 달 1, 2일에 열리는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는 충분한 휴식일을 확보하기 어렵다.
마운드 사정이 어렵다 보니 현장에서는 4위팀 최초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도입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번도 4위팀이 탈락한 사례는 없었다. 1승을 안고 시작하는 메리트가 큰 셈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상대인 키움은 정규시즌 두산에 8승7패1무로 상대전적에서 앞서기도 했다.
두산으로선 다른 대안이 없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미란다는 지금 불투명하다. 내일(31일)까지 엔트리를 내야 하는데 아직은 이야기가 없다.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는 힘들다. 지금 1차전 선발투수가 곽빈밖에 더 있나. 곽빈이 안 되면 (김)민규가 나가고, (이)영하를 붙여야 하는 상황에서 붙이고 그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단 1차전은 곽빈, 2차전은 김민규가 선발 등판하는 큰 틀은 잡아뒀다. 곽빈은 포스트시즌 경험은 없지만, 최근 선발진에서 가장 구위가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발이 강판한 뒤에는 이현승을 비롯해 이영하, 홍건희, 김강률, 최승용, 김명신 등 최근 불펜에서 중용했던 투수들로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
이현승은 30일 최종전을 마친 뒤 "사실 지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다 힘들다. 그래도 '프로'라는 명칭을 달고 있으니까. 힘들어도 잘 이겨내야 한다. 결과가 좋으면 힘들어도 괜찮더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이어 "지금 투수들이 정말 좋다. 많은 분들이 우려하더라. 혹사 이야기도 나오고, (홍)건희랑 (김)강률이가 많이 던지기도 했는데 프로 선수는 당연히 해야 한다. 이겨내야 훌륭한 선수가 되고, 주축 선수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후배들을 향한 강한 믿음을 보였다. 이현승은 "솔직한 말로 올해 초에는 어린 친구들이 오면 어떻게 하며 좋다는 조언을 해줬다. 요즘에는 내가 잘하고 있다 보니 그런 말을 잘 안 한다. 내 자리를 뺏길까 봐"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이어 "2015년 가을에는 어떻게 보면 내가 주연이었다고 치면, 지금은 약간 옆에서 주연들을 받쳐주는 조연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여기서 어떻게 하겠다가 아니라. 후배들이 힘들었을 때 보탬이 된 정도다. 예전에 (김)승회 형도 했었다"며 마운드 위아래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미러클의 산증인이기에 또 한번의 미러클을 믿었다. 이현승은 "이가 없어도 잇몸으로 해야 하는 게 두산이다. 두산이라고 하면 늘 꼬리표처럼 붙는 게 미러클이다. 이번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기적과 같은 경기가 한번쯤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